이민호, 화려한 ‘구준표’에 가려진 힘들었던 가정사 고백에 모두 울컥

배우 이민호가 ‘꽃남'(꽃보다 남자) 당시 생활고를 고백하며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드러냈습니다. 이에 배우로 성공한 그의 재산에도 관심이 쏠렸습니다.

이민호 정일우, 과거 교통사고 재조명

     

12월 25일 방송된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 274회에는 배우 이민호가 게스트로 출연했습니다.

이날 16년 만에 예능에 출연한 이민호는 20살 신인 시절에 겪은 교통사고를 언급했습니다. EBS ‘비밀의 교정’을 통해 갓 배우로 데뷔한 이민호는 학창시절부터 친했던 배우 정일우와 여행을 가다가 중앙선을 넘어온 음주운전 차량에 사고를 당습니다.

이민호는 “가해사 차량에 탑승하신 분들은 다 사망하신 큰 사고였다. 병원에 누워있는 채로 거의 1년 정도 병원 생활을 했다”고 큰 피해 상황을 전했습니다.

같이 사고를 당했던 정일우는 4개월 입원 끝에 퇴원해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이민호는 친구가 잘돼 좋지만 ‘나는 지금 뭐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런 감정이 드는 제 자신도 싫었다. 박수쳐주고 응원하지만 이게 100%가 아니고 조급한 마음이 드는 거다. 나도 빨리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게 ‘있는 힘껏 친구를 축하해줄 수 없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토로했습니다.

이민호, ‘구준표’에 가려진 아픔
파마 머리 “절박함의 상징”

이런 이민호는 퇴원 후 선물 같은 작품인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만났습니다. 무려 3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구준표 역에 발탁된 이민호는 “그때 형편도 그렇고 제 상황도 ‘이건 되어야만 한다’라는 마음이 있을 때였다. 굉장히 간절했다”며 오디션장에 원작 주인공의 곱슬머리 파마를 하고 갔다고 밝혔습니다. 오디션 참가자 중 유일하게 파마 머리를 해 감독님, 작가님도 깜짝 놀랐었다고 합니다.

이민호는 파마 머리는 “저에겐 절박함의 상징이었다”며 “그 머리가 어린 나이에 멋있어 보이는 머리는 아니잖나. 저도 하기 싫었다. 그 머리 하고 일상 생활 하기가 쉽지 않잖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작품이 잘 됐으니까 ‘오’ 그런 거지, 그 머리를 하고 그 작품이 안 됐다면 제 미래가 어떻게 됐을지 잘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이민호는 재벌 2세 구준표 역과 현실이 달라 힘들었던 사실도 털어놓았습니다. 이민호는 “(구준표는) 우동 먹으려고 일본 왔다 갔다 하고 수영 못하게 하려고 수영장에 오리 풀어놓지 않냐”며 “(전) 가족들이 다 흩어져 살아야 될 정도로 상황이 안 좋은 시기였다. 엄마가 가장으로서 모든 걸 짊어지고 있는 뒷모습이 생각이 난다. 각종 고지서를 혼자 보는 엄마의 뒷모습이 너무 작아보였고 쓸쓸해 보였다. 어린 나이지만 빨리 사회생활을 해 짐을 덜어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는 “그때 저는 절박했다”며 “그때 한두 번 만에 감독님이 ‘오케이’를 하면 구석에 가서 엉엉 울고 그랬다. ‘나 몇 번 더 시켜주면 더 잘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에 혼자 아무도 모르게 꺼이꺼이 울었다”고 절박함에 나온 욕심도 전했습니다.

이민호, 엄마에게 전하는 마음 ‘훈훈’

결국 ‘구준표 신드롬’의 주인공이 되며 백상예술대상 신인상까지 수상한 이민호는 “그때 진짜 거의 몇개월 동안 차 안에서만 잠을 잤던 것 같다. 촬영장에서 광고 촬영장 가는 길에 자고, 집 가는 길에 자고 씻고 다시 촬영장 가고. 이걸 거의 1년 반 반복했다”면서 “저 같은 경우 고립을 택했던 것 같다. 사람 만나는 걸 최소화 하고 일만 하고 사적인 시간은 혼자 보내며 고립된 삶을 20대 때 많이 보냈다. ‘놀고 싶다’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 때 더 중요한 걸 생각하며 감정과 충동을 억눌렀다. 지켜야 할 가족, 날 좋아해주는 사람을 많이 생각했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상속자들’, ‘푸른 바다의 전설’, ‘더 킹 : 영원의 군주’을 거쳐 한류스타로 자리매김한 이민호는 11년 연속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한국 배우 1위에 올랐습니다. 이민호는 “20대 때는 1년에 반 이상을 항상 외국에 있었다. 가까운 곳으로 2. 3시간 이동하며 전세기도 많이 탔다. 꿈을 좇아서 그냥 열심히 했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인기를 얻고 나서) 엄마가 먼저 생각났다”며 “그 당시 살고 있던 집을 제가 굉장히 빨리 탈출하고 싶단 생각이 강해 돈 조금 벌고 바로 아파트로 이사 가고, 또 조금 벌어서 빌라로 이사 가고 그랬다. 그래서 막 해외 출장 몇 군데 다녀오면 집이 이사가 있고, 또 해외 출장 몇 번 다녀오면 집이 이사 가 있었다. 저녁 스케줄 끝나고 집에 들어갔는데 너무 좋은 집인데 가구들이 이 집과 어울리지 않는 초라하고, 방 사이즈에 너무 작아 보이는 작은 침대를 보면서 ‘아 이게 (현실적인) 나와 사회적인 나의 괴리구나’를 받아들이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엄마도 누나도 저희 가족이 다 안정기에 접어든 느낌이다 보니까 각자의 행복이 너무 충만한 상태가 된 것 같다. 엄마랑 친구같은 관계다. 정서적으로 가깝다. 엄마가 몇 달 전에 그런 말을 하셨다. ‘아들 시간 있을 때 여행 좀 많이 같이 다니자. 이제 나한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잖아’라고. ‘엄마도 이제 살아온 것보다 남은 시간을 생각하게 되는 나이에 접어드셨구나’하면서 엄마의 시간의 흐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그래도 오랫동안 남을 수 있는 기억들을 같이 만들면 좋겠다. 엄마 사랑합니다”라고 애정을 전해 뭉클함을 자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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