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기괴한 성욕으로 세상을 놀래킨 예술가의 결혼생활
백남준은 친일파였던 아버지의 후광 아래 태어났으나, 그의 예술 세계는 전통적인 가치관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아버지 백낙승은 일본 제국에 협력했던 인물로, 백남준은 그의 자본주의적 가치관을 혐오하게 된다. 1945년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 백남준은 예술의 날개를 펼치기 시작하며 음악에 심취하게 된다.
그의 예술적 여정은 독일에서 존 케이지를 만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케이지의 혁신적인 음악과 행위 예술에 영감을 받아, 백남준은 기괴한 퍼포먼스를 기획하게 된다. 이러한 행위는 그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예술가로 만들었고, 그는 뉴욕에서 샬롯 만이라는 첼리스트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더욱 과감한 작업을 이어간다.
백남준은 샬롯과의 관계에서 성을 주제로 한 작품을 구상하며, 이 과정에서 예술과 사랑이 얽힌 복잡한 감정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는 샬롯 외에도 쿠보타 기사를 짝사랑하게 되고, 결국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된다. 백남준은 쿠보타에게 결혼을 제안하며 그녀의 건강 문제를 함께 극복하고자 했지만, 이는 연민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결혼 후에도 두 사람은 예술적 파트너로서의 관계를 지속해 나갔고, 백남준은 여전히 복잡한 감정 속에서 예술을 추구했다. 그러나 그의 건강은 급속히 악화되었고, 결국 뇌졸중으로 휠체어에 의존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남준은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지키며, 예술가로서의 삶을 지속했다.
2006년 백남준은 마이애미에서 세상을 떠났고, 그의 장례식에서는 그의 예술적 유산을 기리기 위한 퍼포먼스가 열렸다. 그의 삶과 예술은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서 있으며, 그가 남긴 작품들은 예술계에서 새로운 지평을 여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